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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코드 영화들, 그 불행한 결말의 씁쓸함

직딩H 2010. 9. 1. 14:22

 

  사랑에도 정도(正道)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정해진 길을 따라 남들이 보기 좋게 닦아놓은 행로를 순탄하게 밟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가 다 그렇지는 않다. 다양하고도 새로운 문화의 풍토속에 우리는 쉽게 적응할 수 없는 현상들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분명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현상´은 바로 ´동성애´에 대한 이질적 ´문화 트랜드´.

  

"빈께서 저의 나머지 옷을 다 빼앗고 강제로 눕게 하여,

남녀가 교합하는 형상과 같이 서로 희롱하였습니다"

  

  위의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내놓은 ´한국문화시리즈´중의 일부이다.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를 다루는 ´정비된 혼인, 일탈된 사랑´편에 세종 임금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둘째 부인인 봉씨가 세자빈 때 시비 ´소쌍´과 동성애를 벌이다 발각돼 쫓겨난 이야기가 실려있다. 조선시대의 동성애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려있다. 궁녀들 사이에는 ´대식(對食이라 불린 동성애가 성행하여 세종 임금이 동성연애를 한 궁녀들에게 곤장을 치는 벌을 내리고, ´삼강행실도´를 배포했다는 내용도 실려있다.

 

  역사 속 동성애는 조선조 이전에도 있었다. 고려사 세가권 제44편에는 "공민왕이 부인 노국공주가 죽자 아름다운 소년들을 가까이 하는 등 궁중의 기강이 문란해졌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예부터 우리가 ´맷돌부부´나 왕의 남자에서 장생이 연산을 능멸하며 내뱉었던 ´비역´(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성애는 감춰지기는 했지만 엄연히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역사에서도 보여지듯 고독하고 외로운 사랑에 대한 현상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음지 속에서 먼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암흑 속에서나 존재 할 법했던 비주류적 상황들이 요즘에는 당당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낯선 트렌드가 아니다.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동성애에 대한 이슈가, 왕의 남자가 흥행을 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메종 드 히미코, 브로크백 마운틴 등이 줄줄이 개봉을 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당시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아주 진지하게 봤던 영화였다. 이 영화를 포함, 그동안 내가 본 동성애 코드가 삽입 된 영화를 정리했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도 있고, 단순 소재로 다룬 영화도 있다.

 

 

치명적 유혹, 클로이

 

  영화 <클로이>에서 주목할 것은 가정 파괴의 주범인 불륜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까지 초래하게 된 계기는 너무도 잘나가는 성공한 중년 여성의 습성에서 비롯된다. 강한척 하지만 결코 강하지 않은 중년 여성의 모습. 영화 <클로이>는 한 중산층 가정의 붕괴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은 중년 여성의 외로움을 향한 발버둥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좀 더 극적인 긴장감을 위해 동성애라는 소재를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클로이와 섹스를 즐긴 건 순간적인 혼란 속 실수로 보여지지만 결국 그녀를 통해 소원해진 남편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를 중년과 젊은 여성을 통해 잘 표현한 영화였다. 

 

 

강압적인 사랑, 쌍화점

 

  조인성과 송지효의 누드신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쌍화점>. 고려 말 호위무사와 왕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영화다. 결과적으로 보면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룬 영화는 아니다. 왕은 홍림을 사랑하는 동성애자이지만 홍림은 왕후를 사랑했다. 때문에 일방적인 왕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고, 기억에 남는 건 조인성과 송지효의 격정의 베드신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개봉하기 전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이슈를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했다. 우리 시대에 금기시하는 동성애를 내세워야 했을 만큼 스토리에는 자신이 없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다. <쌍화점>은 동성애라는 소재 보다는 주진모, 조인성이 등장했기 때문에 언론과 많은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의리와 사랑, 왕의 남자

 

  내가 처음으로 접한 대중적 동성애 코드의 영화는 <왕의 남자>다. <왕의 남자>는 동성애에 대한 설정 속에서 연산군(정진영), 장생(감우성), 공길(이준기), 남성 삼각관계 이야기이긴 하지만, 굳이 동성애라고 보지 않아도 권력관계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때문에 대중들도 영화에 담긴 동성애 코드에 대한 큰 거부반응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대상이 상남자 감우성과 여자보다 예쁜(김완선을 연상시켰던) 이준기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외모에 초점이 맞춰진 일시적인 동성애 풍토가 생겼던 거 같다. 하지만 그저 호기심이었을 뿐이지 동성애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어필은 아니었다.

 

 

그들만의 공간, 메종 드 히미코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봤던 <메종 드 히미코>라는 일본 영화.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배우 오다기리 조라는 배우를 보기 위해 동행했었다. 게이 양로원을 주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잔잔하고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다. 동성간의 사랑과 섹스를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우정과 의리를 더욱 부각시켰다. 소외되고 외로운 삶의 모습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다루긴 했지만, 그들과 사회간의 괴리감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아니었다. 아쉬웠던 점은 게이들을 너무 여성스럽게 표현하여 게이들에 대한 반감이 묻어 났다는 평도 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희화하면서 관객들에게 따스한 웃음을 선사하였고, 게이들의 평범한 생활을 어필하는데 일조했다.

 

 

파괴 된 삶,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 개봉 이후, 아주 요란하게 개봉했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 흥행 시기와 맞물려 큰 관심을 받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터프함의 대명사인 카우보이끼리의 사랑을 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영화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절대고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참으로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삶의 굴레 속에서 그저 평범한 가장으로 아내도 자식도 있지만 실존적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 사회 통념을 거스르며 20여 년간의 밀회를 통해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늘 세상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그들은 진정한 사랑도 우정도 가질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외로운 죽음, 타임 투 리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준비하는 젊고 유능한 사진작가 이야기를 다룬 <타임 투 리브>. 주인공은 동성애자다. 시작부터 두 남자간의 격정적인 섹스신이 펼쳐진다. 하지만 <타임 투 리브>는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뤘다기 보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과연 무엇인지를 동성애자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영화였다. 주인공이 동성애자이며 그렇게 때문에 삶을 마감하는 순간 그에게는 철저한 단절과 외로움뿐이었다. 여기서 보여주는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외롭고 고독할 수 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유일한 해피엔딩, 인생은 아름다워

 

  최근에 공중파를 타고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 커플. 처음에는 극중의 소소한 소재로 등장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그들의 사랑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공중파에서 직접적인 묘사와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대사와 장면들이 꽤 등장한다.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고 여전히 이들의 사랑은 진행되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 결말을 이끌어 낼지 궁금하다. 낼 모레면 칠순을 바라보는 김수현 작가가 굳이 파격적인 소재인 동성애를 등장시킨 건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언급됐지만, 동성애자도 똑같은 누군가의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한다. 공중파 드라마로 대중들의 인식을 얼만큼 바꿔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고독한 그들

 

  이렇듯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당당하게 개봉하는 것은 단지 상업성에 기초한 것이 아닌,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동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사회의 흐름은 이렇듯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외로운 소수다. 그들을 대변해 주는 건 관객들도 영화 제작자도,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도 될 수 없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을 대변하는 건 결국 그들 자신이어야 한다.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의 영화의 결말처럼, 힘들고 더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동성애에 대한 비호감이 이러한 영화들의 여파만으로 쉽게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통념속에서 금기시되고 배제 당해 왔지만 이제는 적어도 동성애의 존재만큼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이제 그다지 낯설고 불편한 존재만은 아니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의 길을 가건, 그 반대이건, 같은 ´(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건 그건 그들의 운명이고 숙명이다. 그들의 숙명적인 삶을 두고 비판할 필요도, 굳이 끼어들고 상관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가꿔 나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