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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를 만신창이로 만든 황당 보험 사기극

직딩H 2010. 10. 22. 06:30


  때는 바야흐로 직장을 과감하게 때려 치우고 공부를 시작했던 우울한 시절. 백수 주제에 그래도 아버지께서 취직을 했다고 사주셨던 자동차를 타고 편안하게 학원 도서관 등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자동차를 정비하러 친구가 있는 H정비소에 갔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친구가 한마디 했다. 여기서부터 나의 비극은 시작 되었다.

“내년부터 자동차 도색하면 보험료 할증되니까,
올해 가기 전에 도색 한 번 해~!


  귀가 얇은 나. 차를 바꿀 수 있던 입장도 아니었던 터라 다른 색으로 도색을 해 좀더 새로운 기분으로 차를 타고 싶었다. ‘그래, 이번엔 블랙으로 바꾸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친구에게 자세히 물어봤다. 친구 왈 보험처리를 받으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고 이렇게 해서 그렇게 하면 돼!" (자세한 내용은 생략) 간이 콩알 만한 나는 혹시나 보험회사에 발각이 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야 사람들 다 그렇게 해~ 괜찮아~"라는 확답 아닌 확답을 받고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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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길에 들어서다!


  멀쩡한 차에 혼자 범법행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동행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을 저질렀다. 동전으로 쫘~악 그리고 차 키로 쫘~~ 일단 저질러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맘이 편하지가 않았다. 죄책감은 이미 물 건너 갔고 '혹시 잘못 긁어서 보험처리 안 되는거 아니야?' 라는 집착만이 요동쳤다. '그래 좀 더 확실하게 하자'란 생각에 새벽에 혼자 주차장에 나가 더 난도질을 해놓고 들어왔다. 다음날 계획대로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친구가 소개해준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범행을 공모했던 친구와 버스를 타고 돌아 오던 중 청천벽력~ 날벼락이 떨어졌다.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이 차 자차 보험 안 들었는데요?" ㅡㅡ

  완벽한 범죄는 없었다. 차나 보험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절 아버지께서 모든걸 처리해 주셨는데, 중고차라고 아버지께서 자차 보험을 안 들어 놓으셨던 것이다. 대부분 다 자차 보험을 들어 놓는다고 해서 으레 그러려니 하고 제대로 확인도 안 한 무식이 화근~

"..그럼, 그냥 도색하는데 얼마예요?"
"
저거 200만원 넘어요
~~"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다!



  친구는 옆에서 숨 넘어가게 웃고 있다. 다시 돌아가 만신창이 차를 찾아왔다. 끔찍하게 아끼던 차에 정 내미가 똑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놔두면 녹슬고 부식이 된다는 정비소 아저씨의 말을 되새기며, 차를 끌고 마트를 전전했다. 차량 색과 같은 수십 개의 락카 모집에 성공. 마스크, 목장갑, 마스킹 테이프, 신문지 등 등 등을 준비해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바로 락카 발사 시작. 깊게 파인 상처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쉽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가끔 내려오셔서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시는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도 외면하며 일주일 동안 틈틈이 도색을 완성해 나갔다. 마지막에는 투명 스프레이도 뿌려줬다. 그렇게 새롭게 태어난 나의 新무광차. 백미러와 차창에 번진 은색의 스프레이 자국들 정말 최악의 차가 되었다
 


하늘이 돕다?

※ 교통사고 당시 사진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인 체 차를 끌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니 좀 익숙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여름 휴가를 떠났다. 속초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의 새벽에 풀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만취한 차가 내 차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 받았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다행히도 큰 부상자는 없었다) ... 사고가 난 부위만 수리가 들어가 반쪽은 반짝반짝 나머지 반은 여전히 무광으로 초라하게 남아있어, 그 모양은 참으로 우습기만 했다. 그나마 가장 흉물스럽던 보닛을 수리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난 이 사연 많은 차를 아직도 잘 타고 다닌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차는 이미 산타모가 아닌 산티모모 불리우고 있다.

 


결국, 후회하다!


  당시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험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나 역시 그런 공모를 했다는 생각이 후회스럽고 창피하다. 그래서 그 만큼의 대가를 치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와 만나지 8년 된 우여곡절이 많았던 차. 이제는 도색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상의 문제로 굿바이 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