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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면접, 내 생애 최악의 굴욕스러운 면접기

직딩H 2010. 10. 26. 06:30

 

 

  회사에서건 가정에서건 해외에서건 지하철에서건 누구나 굴욕적인 순간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나는 사회에 나오기 직전 인생 첫 면접에서 잊을 수 없는 굴욕을 맛봤다.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막연히 기자가 되고 싶었다. 4학년 1학기 여름 방학 때 아무 생각 없이 모 신문사에 입사 원서를 냈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얼마 뒤 논술 필기시험을 보았다. 물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붙었다. 마지막 남은 건 영어 시험과 면접이었다. 영어시험을 망치고 나왔는데, 이상하게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엔 최종 관문인 면접이 남았다.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 면접 날이 다가올수록 떨렸다. 학생이라 마땅한 정장 한 벌이 없었던 시절이라 직장을 다니는 친구에게 정장을 빌렸다. 당시 나이 26. 멋쟁이 친구가 빌려준 옷은 체크 베이지색 정장이었다. 넥타이만 하나 사서 면접 복장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면접 당일. 면접을 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수록 내 얼굴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군계일학도 아니고, 검정 정장들 속에서 나 혼자 베이지색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이런 된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성적대로 잘랐는지 면접도 제일 마지막 조였다. 드디어 면접실에 들어갔다. 3-4명의 면접관이 보였다.

 

 

  그런데... "" 키다리 여자 3명과 나 혼자 남자였다. 4명 모두 키가 비슷비슷한 상황. 자신감이 점점 땅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관이 키를 물어봤다. "171cm입니다", "169.5cm입니다", "170cm입니다."라는 대답들이 이어졌다. 이윽고 저에게도 "자넨 키가 몇인가?", "네 저는 17xcm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반응이 기막혔다.

 

"에이, 자네가 제일 작아 보이는데?"

 

  망신, 망신 개망신. 지금이야 나이 들어 키 콤플렉스는 별로 없는데, 당시 어린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내 덕분에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오갔다. 키도 크고 당당한 경쟁자들이 어찌나 말도 그리 잘하는지... 좀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돌아왔다. 그런데 질문에 앞서 던져진 한 마디 "자네는 디자이너 같애?" 무슨 말이지 알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베이지색 체크 정장에 갈색 구두, 젤 범벅한 머리, 색이 들어간 안경까지...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색이 들어간 안경을 꼈던 건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너 대체 왜 그랬니?" 2000년대 초반에 개성이라고 하기엔 무리수가 따랐다. 주제 파악이 제대로 되는 순간이었다. 빨리 나가고 싶었다.

 

 

  이후에는 배아복제에 대한 질문, 신문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신문의 레이아웃과 가독성에 관한 설명 등 이런저런 질문들을 받았다.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면접비 3만원을 들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면접을 같이 봤던 키다리 아가씨를 만났다. 면접 보려고 부산에서 올라온 경력 기자였다. 어쩐지 내공이 있어 보이더니...

 

같은 전철을 탔는데, 어색해서 나는 면접 때의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첫 면접이라... 정장이 없어가지구...

친구가 빌려줬는데.. 주저리... 주저리..."

 

  더 망신스러운 순간이었다. 얼마 뒤 지하철에 홀로 남겨진 나 자신이 더욱 초라하고 한심했다. 집에 가는 내내 복장이 왜 그리도 창피하던지. . 이렇게 최악의 나의 첫 면접은 망신스럽게 끝이 났다.

 

  예상대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욕심을 부렸다는 게 스스로도 괘씸했다. 이 굴욕적인 면접을 발판 삼아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면접기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재미난 단골 안줏거리가 되었다. 당시에는 모가 그리 아쉬운지 안타까운 마음이 며칠은 갔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풋풋했던 26살의 추억일 뿐인데...

 

 

직딩한이

 

OTL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면접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는 취업 준비생들도 많다. 나도 이력서를 수도 없이 냈던 경험이 있다. 요즘은 그 당시에 비할 게 아니다. '미생'의 안영이처럼 내 학창시절 때보다 훨씬 유능한 학생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무조건 대기업만 다닐 게 아니라 뭐든 경험하면서 경력을 쌓으면 된다. 나는 처음에 광고대행사에 취업해 1년을 다니다가 야근이 너무 많아 때려치웠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갔고, 학교를 다니면서 봉사활동, 온라인 신문사 넷포터 활동, 모 경제지 계약직 생활도 했고, 모 신문사에서 3개월 수습 후 내쳐지기도 했다. 한 달에 50-70만 원 월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허잡하다고 느꼈던 이러한 경력들이 발판이 되어 대기업에 입사했다. 세상에 버릴 경력은 없다. 어떻게 잘 포장하고 에피소드를 만드느냐가 문제지. 그러니 놀지 말고 일단 뭐든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