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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 욕으로 빼곡한 팀장님의 수첩

직딩H 2010. 10. 28. 15:18

                                                                                                                                           Drawing by KOOLUC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울먹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즐겁다던 회사를 왜? 이유를 들어 봤더니 팀장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전 8시 반에 불려가 10까지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2005년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 지금까지 4명의 팀장님을 모셨고 업무 능력도 인정받으며 굉장히 회사를 즐기면서 다니던 친구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된 건 얼마 전에 외부에서 오신 새 팀장님과의 불화 때문이다.

 

  물론 팀장님에게 팀원들이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동안 팀장님들과 아무 문제없이 5년을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문제가 생기는 건 팀장님이 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친구는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던 내 입장에서 봐도 의아하리만큼 회사를 좋아했다. 내가 정말 의아했던 건 성격이 그 친구가 성격이 꽤 쌘 편이고, 좋고 싫고가 분명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한 성격 하는 애가 한 직장생활을 저렇게 오래 다니다니~ 게다가 저렇게 즐겁게~’

돈을 많이 줘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순식간에 뒤바뀐 운명

 

  부임한지 3개월 된 팀장님. 근데 그 친구뿐만이 아니라 팀원들과도 그리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고 한다. 관둔다는 팀원들도 있었고, 인사팀장님께 면담을 받은 직원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던 와중 불 같은 성격의 내 친구. 아니다 싶은 부분을 그 때 그 때 얘기 했던 것 같다. 그 전 팀장님들과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정말 뭔가 잘못 된 부분은 팀장님들도 받아들이고, 개선된 부분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일로 팀장님과의 관계가 악화 될 거란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친구는 맘이 여린 구석도 있고, 상대가 먼저 내미는 손길은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 전에는 자기가 좀 지나쳤다 싶으면 바로 팀장님께 사과 드리고 잘못도 인정하고 팀장님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도 전팀장님과 연락도 하고 찾아 뵙기도 하고 술자리도 갖곤 한다. 보통 직장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 친구는 입사 5년만에 최고의 상황에서 순식간에 최악의 상황이 됐다고 했다. 


 

충격적 수첩 속 메모들

 

  그런데 이날 이 친구가 받은 충격은 굉장히 컸다. 팀장님이 가지고 온 메모가 빼곡히 들어찬 수첩 하나. 팀장님은 이제부터 말하는 것은 협의도 아니고, 의견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시사항이다라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이 친구가 했던 말 행동들이 수첩에 빨간펜과 파란펜으로 빼곡하게 메모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에 쏟아 부은 것이다. 내용 중에는 아침에 이어폰을 끼고 출근하는 것, 자리에 앉아서 한숨 쉬는 것, 다른 직원과의 업무 조율 중 상식 이하의 말과 행동을 한다는 것, 목소리가 큰 것, 말투가 맘에 안든다는 것, 팀원들과 반말을 한다는 것에 이어 팀원들에 대한 험담과 팀원들이 다 수준 이하라는 발언까지 하셨다고 한다.

 

이어 다른 직원이 보낸 문자(팀장님! 직원들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우리 힘내요!!)까지 보여주시며왜 이렇게 못하냐, 맘에 안드는 애들 짤라버리고 내 입맛에 맞는 사람 뽑는 건 일도 아니라고...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정말 지나치리만큼 섬세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친구가 가장 충격을 받은 건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 같다는 말. 한마디로 인신공격이었다. 그것도 말씀 중간 중간에 반복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수첩을 가지고 인사팀장님을 찾아 가실 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과연 인사팀장님이 이 수첩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 이 친구는 인사팀장님과는 수년을 함께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 이 친구의 성격, 업무 능력, 전 팀장님의 평가, 팀장님들과의 관계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5 VS 3개월이다. 팀원의 말투가 맘에 안들고,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가정교육까지 들먹이는 팀장님을 인사팀장님께서 어떻게 생각 하실까가 더 의문이다. 팀원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해서 고자질하는 무능력한 팀장으로 비춰지진 않을까?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할까?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그리 평탄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만 지나면 더 나아지겠지, 내일은 더 낫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회사 상무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회사 업무는 맡기기만 하면 누구나 다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부분이다라시며 힘든 사람과 평생같이 일을 일하지 않는다. 그게 직장이다. 현명하게 생각하고 성급한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담배를 피우다가 우연히 들은 말이다. 너무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다.

 

난 이 친구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그동안 입지를 잘 굳혀온 곳을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직장인 들은 불쌍하다. 하지만 내 곁에 따듯한 누군가가 분명 한 명이라도 있기 때문에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 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 생활해야겠다. 나만 상처받고 나만 힘들 테니까

힘내라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