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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결혼 잘했다고 느끼는 최고의 순간?

직딩H 2010. 11. 4. 06:30

 

 


  결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좀 더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모셔놓고 혼인서약 이라는 공증을 받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결혼에 대한 만족도는 천차만별이다. 냄비처럼 쉽게 식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꾸준히 오래가는 사랑도 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삶에서 배어나는 사랑은 우정인지 정인지 간혹 헷갈리기도 한다. 사랑의 헷갈림 외에도 결혼 후에는 변화되는 부분이 많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결혼 후 제약되는 많은 일들이 있고, 포기해야 되는 일들도 많다. 남녀가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는 남자 입장. 다시 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나의 결혼 생활의 만족도만을 결산해 보았다.

 

초라한 외벌이, 흐뭇한 아빠


 

  결혼 4년 차다. 1년간은 둘이 벌었다. 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데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첫 아이를 낳았다. 와이프는 산후휴가 3개월을 받았다. 3개월 후 직장으로 복귀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봐주기로 하셨던 어머니께 일이 생겨 1년 휴직으로 연장. 1년 후에도 아이를 맡길 곳은 어린이 집뿐. 결국 맞벌이를 포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벌어서 세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과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집에서 애만 보는 와이프가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맘 속으로는 여전히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맞벌이를 외치던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기겼다. 바로 아이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딸내미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많다. 대부분 할머니가 키우거나 어린이 집에 맡겨진 아이들이다. 어느 순간 딸아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언어나 인지능력 등이 뛰어나다는 걸 느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와이프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는 책과 붙어 살아 딸내미 에게도 책을 가깝게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듯 집에서 수업시간도 마련했다. 2살 말 무렵부터 어린이 집을 다니던 딸아이는 3살이 되자마자 4살 반으로 월반을 했다. 부모로써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생각했다. 돈 보다 중요한 게 분명 있구나. 돈 필요할 때 마다 눈치를 보던 와이프에게 미안했다. 똘똘하게 잘 자라는 아이를 보면 난 결혼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발면에 김치 VS 정성스런 밥상


 

  와이프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거의 9개월까지 새벽 6에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을 차려줬다. 피곤한 날은 저녁에 김밥, 초밥이라도 만들어 놓고, 남편을 굶기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아침 8-9면 아침을 차려 놓는다. 당연한 듯 받아먹던 나는 어느날 친구에게 멀티 메세지를 하나 받았다. 사발면에 김치 사진이었다. 와이프가 차려준 아침 이라고 엄마한테 이른다고 했다. 친구들은 끼니 때 마다 밥 잘 얻어먹는 나를 항상 부러워한다. 와이프는 요리를 잘 한다. 안해봤던 요리도 레시피를 찾아서 뚝딱 잘도 해낸다. 가끔씩은 직장 동료와 먹을 김밥, 부침개, 쿠키 등을 만들어 준다. 통도 커서 양도 많다. 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통해 와이프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친구들이 놀러와도 잘 시켜먹지 않고 손수 준비를 해준다. 이런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지는 미처 몰랐다. 어머니랑 살 때 보다 잘 얻어먹고 사는 지금 난 정말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튼튼한 아내, 건강한 자식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 주는 게 맞긴 하다. 그런데 우리 와이프 무지 강하다. 내가 기대고 싶을 정도다. 건강해서 아이도 순풍 잘 낳고, 똑 부러지게 잘 키운다. 남들도 다 아들 딸 잘 낳고 산다고 하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아준 와이프가 무지하게 고맙다. 그리고 우리 와이프 남자인 나보다 잔병치레도 없다. 튼튼~하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하며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내가 집안일을 안 도와 주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업고도 청소도 요리도 잘한다. 주말에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을 때 혼자 집안 일 하는 아내를 보면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직장 다니느라 피곤하다며 남편을 배려해 준다. 나는 월급을 가져다 주고, 가끔 설거지나 청소로 보답할 뿐이다. 가끔 소리를 빽! 지르는 와이프지만 남편을 위해 집안일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아이들을 현명하게 돌보는 모습을 보면 난 결혼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 없는 싸움의 기술


 

  다른 부부들처럼 신혼 초기에는 싸우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감정이 격해지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목소리부터 높아지고 인신공격이 시작된다. 우리 부부 역시 그랬다. 며칠 동안 한 집에서 대화 없이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와이프다. 그 손길은 대화가 아닌 문자를 통해서다. 책을 많이 봐서 그런지 문자로 오목조목 설득력 있게 잘도 적어 보낸다. 사과를 받으면 나 또한 미안한 감정이 든다. 자연스럽게 화해의 분위기로 접어든다. 몇 번 말싸움 후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언성을 높여 싸우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싸울 때는 문자를 이용한다. 큰 소리 없는 문자 싸움은 금방 조용하게 막을 내리곤 한다. 난 문자 부부싸움을 적극 추천한다. 가끔 서로 보낸 문자를 보고 어이없어 하기도, 웃기도 한다. 부부싸움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다. 난 큰 싸움을 만들지 않는 와이프의 현명함이 좋다. 역시 난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언급한 모든 것들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결혼 생활이 그런 것 같다. 난 결혼할 때 친구처럼 편안하게 자~알 살자고 얘기를 했었다. 친구처럼 욕도하고, 치고 박기도 하고 잘 살고 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아내, 매 끼니마다 정성스런 식사를 대접해 주는 아내, 내 핏줄을 2명이나 건강하게 낳아준 아내, 싸움의 기술을 아는 아내. 내 결혼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그녀 때문에 난 결혼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