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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이간 네비게이션 때문에 나에게 생긴 새로운 문제를 깨달았다. 단순히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약속에 늦고, 버려지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4년이라는 시간속에 내 머릿속의 지도가 모조리 지워졌다는 것이다. 네비가 잘 안되는 요즘, 차를 탔을 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이제는 더 이상 내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덜컥 걱정부터 앞선다. 물론 결론은 내가 ‘길치’여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전을 시작하고 내 차를 장만해 6년 동안 네비 없이도 별 문제 없는 생활을 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네비에 의존한 지난 4년간 나는 분명히 바뀌었다. 공간에 대한 감각과 인지능력이 확실히 떨어졌다.
용인 누나네 집에 다녀왔다.(8/28) 얼마전 AS를 받아 자신만만하게 네비를 켜고 아파트 이름을 입력하고 작동시켰다. 약 1시간 20분거리. 잘 작동되던 네비가 분당쯤 갔을 때 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나의 신경은 곤두서기 시작하면서 사방의 이정표를 살피기 시작했다. “분당을 지나서…용인시 수지…” 를 떠올리고 길을 찾다가 “아! 수지다.” 진입하자마자 차가 무지하게 막혔다. “주말이라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앞에 보이는 이정표에는 수서, 잠실, 송파… 다시 서울로 가고 있는 한심한 내 모습… 약 2시간 1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5시 40분쯤 출발해서 집에 돌아오니
지난 8월 10일에 떠난 여름 휴가. 논산의 처갓집에 들렀다가 변산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벌써 결혼 4년 차. 수도 없이 처갓집을 오갔다 했다. 그래도 항상 마이포인트로 지정해 놓고 네비를 이용했다. 서논산 IC를 지나자 마자 나오는 세 갈래 길을 네비없이 마주했다. 4년 동안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동네였기 때문에 크게 헤매진 않았지만 정말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 변산으로 떠났다. 아침부터 시원하게 잘 작동하는 네비, 그리고 뻥 뚫린 도로 덕에 2시간 넘게 예상했던 목적지에 약 1시간 30분만에 도착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만삭의 와이프와 3살난 딸내미가 있어 친구들을 뒤로하고 처갓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때의 시간
하지만 네비에 의존하면서부터 차 안에서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벌렸다. 음악을 듣는 건 기본이거니와 DMB 시청, 음식물 섭취, 문자, 전화, 잡담… 가끔 IT계의 혁신적인 발명품인 네비의 지시에 따르면 됐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네비에 문제가 생기면서 네비에 의존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동시에 내 기억을 되짚어 본다는게 굉장히 힘든 일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익숙한 동네길 외에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이정표와 감각만으로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헤매며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게 일쑤가 되어버렸다. 확실히 공간에 대한 감각과 인지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얼마전 니컬러스 카가 펴낸 ‘인터넷이 뇌에 끼친 영향’이라는 책에 대한 논란을 다루는 기사를 봤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정보화기기를 사용하게 된 인간은 더 똑똑해졌을까, 멍청해졌을까? 정보화기기가 인간의 인지능력에 끼치는 부정적인 결과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도발적 주장을 담은 책에 대한 기사였다. 네비도 아이티 혁명의 일환이기에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로 기억하지 않고 단지 보기만하는 시각적인 지도에 의존하고 음성에 의존하면서 기억력 훈련 횟수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네비를 통해 엄청난 양의 길에 대한 정보를 다루면서 그동안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정말 어리석게 내는 많은 길을 가봤고, 그 길을 다 아는 듯한 착각. 매스미디어 세상 속에서 수동적이 되어가는 나의 뇌를 가만히 두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례로 내가 겪은 네비게이션에 대한 이야기만을 언급했지만 더 나아가 모든 아이티 혁명이 그저 우리를 풍족하게만 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깊이 있는 생각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나의 두번 째 N은 내일 바로 병원(A/S센터)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나에겐 스마트한 네비도 필요하지만 잘 편집된 지도책이 한 권 더 필요하다는 것을… 네비가 없으면 불편하겠지만 네비를 사용하는 횟수를 줄이고, 스스로 길을 찾는 훈련을 가끔씩은 해야겠다. 나의 뇌에게 이젠 그만 쉬고 일어나라는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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