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직딩 라이프/:: 직장인 에피소드 ::

나이트 가기 싫어 회사 관두고 싶었던 순간

직딩H 2011. 1. 10. 06:30

  지금 다니는 회사에 처음 입사 했을 때 저희 팀에는 여직원 5, 팀장님을 제외하고 남직원이 2명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사 시 동갑내기 남자 선배와 과장님께서 무척 반겨주셨습니다. 점심도 자주 먹고, 가끔은 술자리도 하고 남직원들간의 동료애를 다져 나갔습니다. 과장님이랑은 정확히 10살이 차이 나는데, 워낙 동안이시고 잘해 주셔서 친구 같은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동갑내기인 남자 선배는 같은 동내에 사시는 과장님을 썩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유독 좀 얌전한 선배와 매우 활발하신 과장님 성격이 안 맞으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장님께서는 저희 집과 같은 방면으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과장님께서는 앞으로 노가리 더 많이 먹자~(자주 가시는 맥주 집이 있죠노가리만 나오는)라시며 반갑다고 하셨습니다. 집 방향이 같으니 술자리에서 같이 택시를 타고 가거나 버스를 타고 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서 회식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를 한 후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자꾸 나이트를 들르시는 거였습니다. 처음에는 한 두번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워낙 좋아하시는 곳이라 집 방향이 같았던 막내인 저를 자주 애용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점점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집 방향이 같아 가는 길에 있는 곳을 들르셨는데, 나중에는 아예 서울시내 단골로 이동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멀어져 택시비로 수 만원 씩 내면서 따라다니는 게 좀 버거웠습니다 

  


  한 번은 제헌절(당시에는 휴일) 전 날 친구들과의 약속까지 취소하고, 협력업체와의 저녁 자리에 과장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술을 마시고 나이트로 향했습니다. 다음날이 쉬는 날이긴 했지만 와이프와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한 터라 신경이 좀 쓰였습니다. 저는 술도 잘 못 마시는데, 좀 과음을 한 터라 그 시끄러운 곳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불쌍해 보였는지 마지못해 과장님께서는 일어나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시각은 새벽 2시 30분. 나가는 도중에 입구에서 과장님은 친구분을 만났습니다.
XX야 너 먼저 들어가라~ 저는 혼자 쓸쓸하게 편의점에서 수 만원의 택시비를 찾아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 날 물론 너무 피곤해 와이프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 ~ 진짜 관두고 싶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계열사의 같은 부서와 매년 망년회를 했습니다. 두 팀이 모여 기분 좋게 회식을 하고 집 방향이 같은 과장님, 다른 회사 팀장님과 저와 택시를 탔습니다. 또 나이트로 직행하시더군요. 근데 불행하게도 그 날은 평일이었습니다. 다른 회사 팀장님께서는 다음 날 출근을 하셔야 된다 시며 일찍 들어가셨습니다. 또 다시 둘만 남게 된 상황. 시간은 잘도 흘러 가더군요. 새벽 4가 넘어가는 순간. 저는 너무 걱정이 되서 내일 출근도 해야 되는데, 들어가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결국 과장님과 함께 나갔습니다. 그는데 소주 한 잔을 더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워서 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 날 입사 후 처음으로 지각을 했습니다. 출근 시간이 08시 까지인데, 08시 2분에 카드 키를 찍고 난생 처음 사유서까지 썼습니다.(저희 회사는 1분만 늦어도 월말에 사유서를 제출합니다) 정말 우울했습니다. '나 이렇게는 못살아... 회사를 관둬야 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동갑내기 남자 선배가 왜 성격좋은 과장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지 서서히 알게 됐습니다. 그 선배도 집 방향이 같았을 때(저희 동네 쪽으로 이사 오시기 전이었죠...) 맨날 나이트에 끌려 다녔다고 합니다. 택시비도 수 만원씩 나오고 신혼인데, 집에도 늦게 들어 갈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정말 회사를 관두고 싶었다고 제가 딱 그 심정이었습니다  


  몇 번 안 좋은 경험을 한 후 회식자리나 어쩔 수 없는 자리를 빼곤 일단 무조건 약속이 있단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매번 그러면 너무 티가 나니까 3번에 1번 정도만 약속이 없다고
.^) 그러다 보니 저를 별로 안 좋아 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임산부였던 와이프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요...
 

  얼마 뒤 과장님은 다른 계열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가시기 전에 한 마디 하시더군요. 너랑 집 방향도 같고, 더 많이 친해질 줄 알았는데. 술 한번 사달라고도 안 그러고 서운했다…”라고

 

  막상 떠나신다니까 아쉬웠습니다. 나이트만 빼면 정말 괜찮았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계시지만 그동안 정이 들어 가끔씩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 계신 그 곳에서도 열심히 나이트를 애용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ㅎㅎ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하기 싫은 일들을 할 때가 많이 있죠. 그게 업무적인 일일 수도 있고, 회식과 같은 술자리 일 경우도 있죠. 특히 사회 초년생 시절은 더욱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정말 하기 싫고, 못 견딜 것 같아도 그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평생 갈 것 같았던 그 시간(나이트 악몽)이 1년 4개월 만에 끝이 나더라고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 항상 명심하고 사회생활을 한다면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괴롭지 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맞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