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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날이면 떠오르는 내 인생 최악의 졸도 사건

직딩H 2013. 11. 7. 08:45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날은 언제일까? 어느 대학을 들어가느냐가 달린 수능 시험일이 아닐까? 나에게는 매년 수능 시험 일 때 마다 떠오르는 악몽 같은 사건이 있다. 그런 중요한 날을 나는 통째로 날려 버렸다. 당시에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전화위복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능시험은 망쳤지만 그래도 지금은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대기업에 입사해 잘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 나의 고등학교 성적은 전교 20여등 정도. 내신 3등급. 시간은 어느새 17년 전이다. 수능 당일 날 아침.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뭔가 일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시험장을 찾았다. 감독관이 들어오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언어영역은 수능의 꽃 이라고 할 만큼 나에게 많은 점수를 안겨주었다. 자신 만만하게 시험에 응했다.

 

  그런데 듣기평가부터 좀 애매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당황이 되더니 듣기 평가에 신경이 쓰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맘을 잘 가다듬으며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런데 20번에서 27번 정도의 지문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렵고 명확한 답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이 엄습했다. 식은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정말 지문이 까맣게 보였다. 정신이 혼미해 지더니 맥없이 책상에 쓰러졌다. 우왕좌왕…. (나 때문에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방해가 되진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지금도 미안하다)

 

  양호실로 옮겨졌다. 양호실도 참 멀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몇 분 남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면서 대충 답안지를 작성했다. 거의 다 찍었다. 2교시 수리영역까지 양호실에서 치렀다. 점심 시간에 교실로 돌아왔다. 너무 어이없고 창피해 재수를 결심하고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찾아와 다들 시험이 어려웠다면서(당시 신문 기사에는 언어영역의 지문도 길고 내용도 생소해 수험생들이 많이 어려워했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나를 말렸다.

 

  점심시간 이후 맘을 텅 비우고 시험을 마쳤다. 재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소식을 듣고 실망하시고 나 또한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얼마 뒤 성적이 나왔다. 하늘도 무심하게 찍은 문제들은 거의 틀린 것 같았다. 그래도 27번까지 중에 24문제를 맞췄는데,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더욱 속상했다. 성적은 다른 부분에서 좀 올라 크게 떨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양호실만 안 갔어도…. 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원서를 쓰는데, 혼자 재수 할 결심이 쉽게 서지 않았다.

  

  나름 내신이 나쁘지 않아, 내신 비중이 높은 곳을 골라 지원을 했다. 공대에 입학을 했다. 학교 생활도 재미없었다. 내가 어울릴 아이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부만 했다. 1학년을 과수석으로 마치고, 군대를 갔다. 제대를 하고 학교 보다는 학과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내가 꿈꿔왔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미대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편입 준비를 시작했다. 

 

  비전공자와 미대생들과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고 저녁에는 미술학원, 영어 학원을 다녔다. 결국 3군데의 미대에 합격을 했고, 드디어 내가 꿈꾸던 대학생활을 맞이하게 됐다. 학교도 전공도 너무 좋았다. 편입생 주제에 과대표도 맡았고, 장학금도 놓치지 않았다.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다. 공부에 욕심이 생겨 대학원 공부도 마쳤다. 지금은 전공을 잘 살려 대기업에 취직해 처자식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내 시작은 미흡하였으나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라는 말이 있다. 수험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좌절하고 실망할 수 있지만 그것이 분명 기회일 것이라고... 당시 내가 수능을 조금 더 잘 봐서 조금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면 나는 거기에 안주했을 것이고, 기를 쓰고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시험장에서 쓰러져 시험을 망쳤던 것이 내 인생 최고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노력이라는 것에 대한 보상도 받을 수 있었다. 좌절! 그것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는 원동력 이라고 말하고 싶다.  

 

에피소드.

 

  수능시험 이후 종합병원에서 뇌를 포함한 전신 종합 검진을 받았다. 결론은 긴장감에 의한 심리적인 것. 그 이후 심약한 아들이 걱정되셨던 어머니. 편입 시험, 면허 시험, 면접 시험 날에는 항상 내 책상에 우황 청심원을 올려 놓으셨다.

 

 

세상의 모든 수험생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여러분들의 앞날에 탄탄대로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