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데미안>을 처음 읽은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14살 나는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책상에 앉아 열심히 <데미안>을 읽었다. 당시 무슨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못하는 건, 마지막 장면이다. 싱클레어가 거울 속에서 막스 데미안을 꼭 닮은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어쩌면 이제 <데미안>을 읽기엔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세월이 흘러도 절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한 '자아'라고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거다. 책을 읽은 후 많은 생각의 물꼬가 다시 트였고, 데미안을 처음 만났던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 보기도 했다.
소설 <데미안>은 '밝음'과 '어둠'의 세계로 극명하게 나뉜다. 싱클레어의 집, 그리고 가족들에게서 풍기는 '밝음' 그리고 크로머를 만나면서부터 접하게 되는 '어둠'. 싱클레어는 처음 접하게 된 '어둠의 순간'을 계기로 내면을 발전시키며 성숙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은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행복과 불행을 의미한다. 비단 사춘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모든 첫 세상, 첫 경험'에 적응해 나가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데미안>이 나에게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나 혼자 공감할 수 있는 중학교 시절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게 변했고 발전해 있다. 자아를 완벽하게 만났다거나 당당하게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싱클레어처럼 많은 방황과 시련, 고통을 통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싱클레어는 '나'이고 '우리'인 것이다.
소설 <데미안>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모토를 앞세운 짧은 철학적 성찰로 시작된다. 그리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라는 경구로 귀결된다.
알을 깨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찾는 과정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들은 바로 자신에게 이르는 과정이고, 배움이다. 그 과정과 배움에서 겪는 타락이나 일탈 또한 내 안에 있는 것들에서 비롯된다. 내 안에는 언제나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인성과 수성, 선과 악을 다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신, 압락사스가 자리하고 있다. 압락사스는 바로 자신이고 '나'는 압락사스에게 다가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압락사스는 내면의 인도자다.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 즉 인생은 결국 '나에게로 가는 나만의 바른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고, 자아를 찾는 것(싱클레어가 그랬듯)이다.
사춘기를 막 시작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여전히 싱클레어와 데미안에게 큰 애정이 있고, 그들은 나에게 왠지 모를 가슴 떨림과 여운을 준다. 14살의 나 그리고 28년 뒤의 나… 둘 다 똑같은 '나'인데, 나는 여전히 또 다른 나를 찾고 있는 길 위에 서있는 기분이다.
언제나 설레는 책, <데미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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