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이라크 전경>
지금은 IS때문에 떠들썩한 이라크에 5박 6일간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내전 직전에 다녀왔다. 이라크는 서울보다 6시간 느린 곳. 하지만 서울에서 무지하게 먼 곳. 비행기만 왕복 24시간은 탄 것 같다. 먹고 자고, 먹고 또 자고, 영화 보다 자고... 그래도 끝이 없을 정도다. 신혼여행이었으면 몰라도 아마 침울한 곳으로의 출장이라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출장 시 짐들>
현지 직원들이 부탁한 이런저런 물품들을 챙기다 보니 출장 가방이 이민 가방이 됐다. 인천에서 두바이 공항으로 가서 환승 후 바그다드 공항으로 갔다. 갈 때는 두바이 공항에서 탑승 대기시간이 3시간 반 정도여서 맥주 한 잔 하고, 한숨 자면서 공항에서 대충 버텼는데, 돌아올 때는 대기시간이 12시간 50분이나 돼서 호텔 바우처를 받아 두바이에서 하룻밤 체류. 덕분에 짧지만 즐거운 두바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두바이 여행 포스팅은 다음에...
예상 밖, 밝고 명랑한 이라크 국민들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바그다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이라크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영어를 잘 못 했다. 딱! 내 수준이라 서로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가족들 사진도 보여주고, 직업을 공유하고, 우리 회사에서 이라크에서 진행하는 공사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눈 빛을 보니 한 반 정도만 이해한 거 같았다.
비즈니스 석에 계시던 상무님께서 허리 아프시다며 잠시 나오셔서 걸으시면서 멀리서 나를 봤다. 그러더니 "OO이 영어 잘하던데, 옆에 앉은 외국인이랑 한참 얘기하더라"라는 말씀을 나중에 하셨다. 웃겼다. 따로 영어를 안 시키길 바랄 뿐.
도착할 때 즈음 나한테 명함을 달랬다. 가방에 있어서 꺼내기 어렵다니까 전화번호랑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친절함이었겠지만 왠지 좀 무섭기도 해서 내가 연락처를 받아왔다. 아직 전화기 안 어딘가에 있을 거다.
바그다드 공항 직원들도 친절했다. 한류열풍 덕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 것 같았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한 직원이 나를 보더니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돌 OO를 닮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허여멀건한 동양인들이 다 비슷해 보였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여권을 주면서 "유어 픽처 이즈 베리굿!!"이라는 말도 했다. "땡큐 베리 베리 머치"라고 했다. 그리고 이라크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 참여했는데, 동양인이 귀해서 그런지 우리 보고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도 했다. 국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국민들은 참 밝고 순수한 느낌이었다.
삼엄한 경계, 전쟁의 흔적들
<이라크 도심의 경계태세>
이미그레이션을 빠져나오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삭막함으로 바뀐다. 공항 내 사진 촬영 금지. 카메라나 캠코더 등 카메라 장비에 대한 검문검색도 삼엄하다. 그리고 공항 밖으로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온다. 일행이 장비 때문에 잠시 검문을 받으러 가 있는 동안 담배가 너무 땡겨 뭣 모르고 잠시 나갔다가 못 들어올뻔했다. 몰랐다고 하니까 한 번은 들여보내 주는데, 두 번은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만약 이라크를 가게 된다면 볼 일을 모두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가도록~
이라크에서는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 차량에 탑승해서 이동을 해야 한다. 방탄조끼는 무지하게 무겁다. 저질 체력이라 그런지 이동하는 1시간 동안 허리가 무지하게 아팠다. 몸이 너무 불편해서 반은 넋을 놓고 있는데, 한바탕 비가 시원하게 내리더니 무지개가 떴다. 한국이나 이라크나 무지개는 똑같았다. 방가~ 방가~
<방탄 차량, 방탄 조끼 그리고 무지개>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해서 몰래몰래 찍느라 많이는 못 찍었다. 그래도 이라크의 분위기는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도로 곳곳에 검문검색이 삼엄하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반면에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다. 전쟁의 흔적들도 곳곳에 남아있다. 부서진 집들, 폭발한 차량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라크 도심 전경>
출국 시 다시 바그다드 공항으로 들어올 때는 검문검색이 더욱 삼엄하다. 시간도 꽤 걸린다. 공항에 들어서면 체크인 하는 곳까지 짐을 들어다 준다는 이라크 아이들이 무지하게 달라붙는다. 불쌍해서 짐을 맡기고 만원을 줬다. 만원의 가치가 얼마인지 몰라, 난감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족들은 이라크로 출장을 간다니까 많이 걱정을 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느낌은 덜했다.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뭘~
<바그다드 공항 부근의 삼엄한 경비>
공항 근처에는 이라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푸른 녹지도 보인다. 그리고 이라크는 열사의 나라라고 해서 4계절은 없지만, 여름에만 50도 이상으로 올라가고, 그 이외의 계절에는 긴 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겨울의 아침나절 기온은 15도 정도다.
<바그다드 공항 부근의 조경>
현재 이라크는 내전 중이기도 하지만, 바그다드 남부에 위치한 비스마야에서는 한국 기업이 아파트 10만 세대의 신도시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등 재건 사업이 한창이다. 세계 최고의 산유국 답게 빨리 재건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이라크 출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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