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 개봉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이 영화 <톨 맨>의 소재는 지독하게 가난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납치, 연쇄 실종사건이다. 아이들이 행방불명이 된 후 단 한구의 시신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항상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을 감시해야 한다.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아이는 사라진다. 이러한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마을 사람들은 Tall Man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의 납치에 대한 분노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항상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열감기만 걸려도 노심초사 하는 사람이 부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를 하루 아침에 잃고, 그 행방조차 모른다면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고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그 심정은 평생 지옥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톨 맨에서는 수십여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고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가 없다.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부모 입장인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왜!” 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들이 과연 어디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될까’ 라는 비참한 광경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상과는 너무 다른 반전으로 내 뒤통수를 보기 좋게 내리쳤다. 하지만 아프진 않았다. 그 이유는…
행복한 아이들, 반전의 납치
'사라진 수십 명의 아이들은 과연 어디에?'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은 반전이었다. 아이들을 납치했던 톨 맨은 그 지역의 의사와 간호사(주인공 : 제시카 비엘) 부부였다. 그들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부부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집착으로 아이를 납치했다? 라는 생각은 역시 오산.
<스포있음>
그들은 자신들은 가질 수 없지만 지독하게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빈곤의 악순환, 대물림… 이라는 무거운 현실. 배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물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대물림. 그래서 이 부부는 아이들의 잠재력과 밝은 미래를 위해 치밀한 납치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들은 동네 아이들을 납치해 결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먼 지역의 부유한 부모에게 입양을 보냈다. 평생 비참한 가난 속에서 부모와 같은 처절한 삶을 살 뻔 했던 아이들은 새 삶을 선물 받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낳아준 부모를 잊고 새로운 부모를 받아들인다. 영화 막바지에 줌 인으로 잡힌 아이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비참한 모습의 낳아준 부모 그리고 찬란한 미래를 보장하는 새로운 부모. 과연 어떤 부모가 정답일까. 영화 톨 맨을 보고 감히 현답을 말할 수 없는 이 문제를 두고 깊은 생각을 해본다.
부모란 무엇인가?
자식을 낳아 어떻게 키우건 그건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다. 부모가 너무 불행해서 그 불행을 대물림 할 수 없어서... 아이의 행복을 위해 과연 아이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해외 입양 수출국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나중에 부모를 다시 찾은 입양아에게 부모들은 지독한 가난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기도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내 핏줄… 가슴 아픈 현실이다.
영화 톨 맨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입양 된 아이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귀부인의 딸로 자라게 된 여자 아이는 무한한 교육의 기회와 함께 세상의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게 된다.
5-6살의 정체성이 잡히기 전 사라진 아이들과 달리 스스로 판단하고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여기서 또 다른 반전이 등장한다. 가정환경은 유복하지 않았지만 자기를 사랑했던 친모와, 스스로 선택해서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현재의 부모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 자신의 고민이자 이 영화 톨 맨이 던져주는 의미심장한 질문이 아닐까?
이 아이 조니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그 아이들은 다 잊은 것 같다.
난 그럴 수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모두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내가 원했던
인생이란 걸 상기한다.
내가 원했고
내가 이뤄지게 했다.
이렇게 사는 게
더 나은 것 아닐까?
그렇지? 그렇지?
...
우리는 요즘 부모의 자격이 없는 부모들도 언론을 통해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부를 제외하면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다. 누가 잘나고 못나고를 따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항상 희생하고 목숨도 바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내 아이가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 역시... 정답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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