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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두 남자에게 농락당한 영화

직딩H 2010. 9. 27. 06:30

 

  영화 <죽이고 싶은>은 스릴러와 코믹성을 절묘하게 조합했다는 평을 받은 영화인 만큼 기대가 됐던 영화였다. 연기파 배우인 유해진과 천호진 때문에 볼거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나는 왠지 뒤통수를 맞고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약 10여분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였고, 10분은 70여분 동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에 너무 미약하고 허무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나리오에 대한 실망과 이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열연을 한 배우들에 대한 아쉬움, 조원희, 김상화 감독의 연출에 대한 섭섭함이 가득하다. 새벽 2시까지 졸음을 참으며 지켜본 후 밀려오는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화 <죽이고 싶은> 80년대의 어느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벌어지는 두 환자의 사투에 대한 이야기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코스를 제대로 그려내고는 있지만, 위기의 순간이 너무 미약했고, 절정에 다다랐을 때도 어떠한 긴박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결말은 너무도 허무하게도 내레이션으로 장식됐다.

 

  영화는 살인, 뇌손상, 기억상실, 음모라는 테두리 안에서 흘러간다. 일과처럼 자살 기도를 하는 남자 김민호(천호진)의 등장이 영화의 발단이다. 그는 뇌출혈 때문에 반신불수의 신세다. 늘 죽고 싶어 발악을 하지만 그 마저 여의치 않다. 전기 치료까지 받아가며 살고 싶지 않은 생명을 연장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벽돌에 머리가 으스러진 환자 박상업(유해진)이 같은 병실에 들어온다. (과도한 뇌손상으로 생명이 위험했던 이 남자는 존스홉킨스의대 출신의 백과장덕분에 살아난다.) 그런데 이 박상업은 김민호가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원수였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볼거리는 반신불수의 몸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말 안듣는 자신의 몸둥이와 벌이는 사투다. 효자손과 젤리를 이용해 상대를 죽이려고 하고, 스타킹에 비누를 넣어 박상업의 머리를 강타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살인 방법은 분무기를 이용한 전기 충격이다. 감독은 반신불수의 환자가 행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살인 방법을 찾아내서 스크린에 옮겼다. 그리고 그 방법에 천호진의 능숙한 연기와 유해진의 능청스런 연기가 시너지를 일으켜 완성도 높은 작품의 탄생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 <피라냐>등의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인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이렇게 유치한 살인법은 유치한 장난에 불과했다.

 

  영문도 모른 체 죽음의 공격을 받던 박상업도 불현듯이 기억이 돌아온다. 그 때부터 서로의 상반된 기억을 바탕으로 이들의 원수 죽이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김민호는 살인을 위협하던 입장에서 위협받는 입장이 되며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이들이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영화의 말미를 장식 할) 백과장이 실험을 위해 주입한 약물 때문이었다. 그들은 약물의 효과에 휘둘리며 환각 속에서 서로를 원수로 기억한다. 드디어 영화의 절정의 순간이 드러난다.

 

 

  절정의 순간은 그야말로 졸작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반신불수의 두 늙은이가 벌이는 사투는 전혀 긴박하지 않았으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꼼지락거리는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로비에 모인 환자와 간호사, 의사들의 모습은 더 가관이다. 경기의 순간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과 병실에서 혈투를 벌이는 그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분명 긴박한 순간을 연출하려 했을 것이다. 허나 프로 야구라는 상황 설정은 너무 빈약하고 밋밋했다. 아무런 감흥도 절박함도 느꺄지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한 절정이 끝나가는 순간, 한 여자의 등장과 내레이션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영화는 처절하게 막을 내린다. 순식간에 끝난 결말에 대한 상황 정리였다.

 

 

  두 남자와 이 상황을 연출한 백과장의 등장은 조잡스럽고 억지스러운 반전이었으며, 영화 내내 두 남자의 곁을 지켰던 유 간호사(서효림)와 그들과의 관계 역시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느낌이다. 억지스런 연계성과 어설픈 반전으로 허탈하게 마무리 된 복수극 <죽이고 싶은>. 우리 나라 스릴러 영화에 누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더욱이 천호진과 유해진이라는 두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더했기 때문에 실망은 더욱 컸다.  죽이고 싶은 두 남자에게 농락당한 기분이다. 

 


죽이고 싶은 (2010)

Enemy at the Dead End 
7.7
감독
조원희, 김상화
출연
천호진, 유해진, 서효림, 이정헌, 라미란
정보
스릴러 | 한국 | 91 분 | 20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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