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프럼 어스>는 정말 특이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숲 속의 오두막. 회상 신 하나 없이 총 8명의 출연 배우들이 100% 대화로 풀어나가는 영화다. <맨 프럼 어스>에는 딱히 위기, 절정이라고 할 만한 장면도 없이 마지막에 짧은 반전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영화는 신기하게도 시종일관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지막에 보여준 반전의 순간도 영화 전체를 뒤집어 놓지는 못하지만, 역사적 사건과 기발한 발상이 시너지를 발휘해 기대 이상의 메시지를 남긴다.
누구도 입증할 수 없는 진실 혹은 거짓
숲 속의 오두막, 한 교수의 송별회 모임. 영화 <맨 프럼 어스>의 시작은 송별회에 참석한 교수들 중 한 명이 제시하는 ‘만약에’라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만약의 시발점은 ‘14,000년 전부터 늙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에서부터다.
영화의 주인공 존 올드만(데이빗 리 스미스)은 각 분야별 교수들을 앞에서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늙지 않기 때문에 10년마다 신분을 바꿔 이동을 한다는 것. 처음에는 모두 우스개 소리로 받아들이며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존 올드만의 터무니 없는 주장이 거듭되면서 결국, 진지한 토론과 논쟁을 거듭하며 영화는 흥미를 더해간다.
우리가 세계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는 것들은 역사책에서 그리고 수세기 동안 조상들이 밝혀낸 사실의 자료에 기초한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존 올드만은 이러한 일반적인 상식에 조금씩 그럴듯한 살을 붙이고, 역사적 빈 공간들을 설득력 있게 채워가며 교수들의 모든 반박에 망설임 없이 답한다. 처음에는 그가 타고난 언변 술로 순간 순간의 위기를 넘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사시대의 유물을 가지고 있냐는 물음에 당시 그 물건들은 유물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던지고, 1923년에 어디에 있었냐는 ‘우문’에 “당신은 1년 전 오늘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나느냐?”라는 ‘현답’을 쏟아낸다. 분명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에 빠져들며 정말 진실이 아닐까?라는 공상은 더해갔다.
물론 이들의 진실게임에서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는 논리적으로 입증을 하고 반박할 수는 있으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실체를 입증할 증거는 누구에게도 없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상상력을 무한 자극하며 더욱 흥미롭기만 하다.
역사적 반전을 통한 쾌감
존 올드만과 이야기를 나누던 교수들은 양극화로 대립을 하게 된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흥미를 가지느냐 흥분을 하느냐를 놓고 하는 말이다. 말도 안될 것만 같은 이 영화는 양분화 된 교수들의 진실공방을 통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며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존 올드만의 엄청난 발언 때문에 대화의 흐름과 영화의 흐름은 위기를 맞는다. 부처의 가르침을 중동에 전하려다 자신이 예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 이 순간 언뜻 떠오른 것은 ‘반기독교적인 영화? 혹은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일부 교수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의 위험한 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교회에서는 엉뚱한 믿음을 전파하고, 그 믿음은 잘못된 종교적 인식을 양산해 낸다는 이야기다. 종교계에서 기겁을 할 발언이다. 8명의 인물 중 독실한 크리스찬인 여교수 에디스(엘렌 크로포드)는 경악한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존 올드만은 상황을 파악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자신이 지어낸 얘기라고 말하면서 열띤 토론은 정리됐다.
(※스포있음) 대화가 그렇게 끝나고 동료들은 작별 인사를 하고 하나 둘 떠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반전이 펼쳐진다. 그 반전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바랐던 반전(존 올드만의 말이 사실이었으면...)이었다. 교수들 중 한 명은 60년 전 영국에서 자신이 낳은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알아본 자식이자 교수는 흥분과 놀라움으로 쓰러져 심장마비로 죽는다.
그리고 존 올드만은 다시 다른 곳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러 떠난다. 이렇게 잠깐의 반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영화는 커다란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아무도 모르기에 흥미로운 역사
누구도 역사적 사실을 두고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했고, 그런 대과거가 주는 이론적 사실의 중요성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굳게 믿고 있었던 종교적인 신념과 신앙이 허황 된 것이라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기독교에 대한 비판도 신성모독도 아니다. 단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잠재되어 있는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영화 <맨 프럼 어스>를 글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찌보면 굉장히 유치할 것 같은 스토리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는 <맨 프럼 어스>의 새로운 논리에 신기했고,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허구에 쾌감을 느꼈다. 허무맹랑한 이 영화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브라보 직딩의 하루 > :: 직딩힐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당거래, 소름 끼치는 현실적 묘사가 아름답다 (28) | 2010.10.29 |
---|---|
마피아 보스의 치졸한 복수극, 22 블렛 (14) | 2010.10.28 |
더 트루스 : 무언의 제보자, 공권력 앞에 무너지는 진실 (9) | 2010.10.24 |
검우강호, 화끈한? 반전이 숨어있는 숨막히는 무림 스토리 (12) | 2010.10.17 |
영화 적인걸,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 기법, 최고인걸? 적인걸 (17) | 201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