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밤 우연히 KBS 취재 파일 <나는 동성애자 입니다>를 보게 됐다. 아직 우리 사회의 음지인 그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인권을 위한 방송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들의 음지만을 다루며 비관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방송을 보면서 동성애 영화 속의 비극적인 모습들이 생각났다. 영화는 현실의 재구성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름답게 영화를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접해온 동성애 영화들은 대부분 비극적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조차 행복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내가 접해 본 영화 중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메종 드 히미코>는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 취재를 위해 본 최초의 동성애 영화였다. 당시 <왕의 남자> 때문에 동성애 영화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접해 본 동성애 코드가 삽입 된 영화를 정리해봤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도 있고 단순한 소재로 삼은 영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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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삼각관계 속 그들
국내 영화로는 처음 접한 대중적 동성애 코드의 영화는 2005년의 <왕의 남자>. <왕의 남자>는 동성애에 대한 설정 속에서 남성 삼각관계 이야기이긴 하지만, 굳이 동성애라고 보지 않아도 권력관계 속에서 충분히 그런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대중들도 그다지 큰 거부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일부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고 부각시키는 일시적인 풍토가 생기긴 했지만 대중문화에 향해 동성애에 대한 심도 있는 어필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남성간의 삼각관계 속에서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 비극 속에는 동성애가 있었다.
두 번째 영화는 2006년에 개봉한 <메종 드 히미코>라는 일본 영화다. 동성애 영화인지 모른 채 와이프가 좋아하는 ‘오다기리 조’라는 배우를 보기 위해 본 영화다. 게이 양로원을 주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잔잔하고 평범한 이야기다. 동성간의 ´사랑과 섹스´ 등을 강조하지 않았고, 그들의 ´우정과 의리´를 부각시켰다. 소외되고 외로운 삶의 모습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다루긴 했지만, 그들과 사회간의 괴리감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아니었다. 게이들을 너무 여성스럽게 표현하여 게이들에 대한 반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희화하면서 관객들에게 따스한 웃음을 선사하였고 동성애를 어필하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역시 그들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각인 시킨다.
그 다음이 시작 전부터 요란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왕의남자>와 맞물려 그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터프함의 대명사인 카우보이끼리의 사랑을 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영화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절대고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철저히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삶의 굴레 속에서 그저 평범한 가장으로 아내도 자식도 있지만 실존적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그들은 겹겹으로 옭아맨 사회 통념적 관습을 거스르며 20여 년간의 밀회를 통해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늘 세상의 외각에 서 있는 그들은 진정한 사랑도 우정도 영원히 가질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파괴하며 막을 내린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후 접한 영화가 <타임 투 리브>였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준비하는 젊은이의 이야기. 주인공은 동성애자다. 이 영화는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뤘다기 보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과연 무엇인지를 동성애자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그런데 주인공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삶을 마감하는 순간 그에게는 철저한 단절과 외로움뿐이었다. 여기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그는 결국 해변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2008년 화제 작 <쌍화점>. 고려 말 호위무사와 왕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영화다. 결과적으로 보면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룬 영화는 아니다. 왕은 홍림을 사랑하는 동성애자이지만 홍림은 그렇지 않았다. 홍림은 왕후를 사랑했다. 때문에 일방적인 왕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그의 광기 어린 동성애자의 모습에 씁쓸함 만이 느껴졌다. 영화를 개봉하기 전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이슈를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했다. 사실 동성애 영화라는 것을 내세웠다기 보다는
2010년. 우연히 집에서 와이프와 접한 영화 <클로이>. 한 가정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남편의 외도에 대한 의심, 마음처럼 안 되는 아들에 대한 허탈함을 지닌 체 살아가는 캐서린. 그녀는 공허한 마음을 채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클로이를 만나고 잠시 그녀에게 흔들리며, 섹스까지 하게 된다.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가정 파괴의 주범인 불륜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결국 캐서린은 본래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동성애를 갈구하던 주인공 캐서린의 죽음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클로이>역시 동성애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렇게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동향이 분명 반영된 것이다. 사회의 흐름은 이렇듯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외로운 소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법률이 개정되고 언론에 수없이 노출 되어도 사회적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으로 바라봐 달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해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KBS 취재파일의 변태적인 사우나의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비록 그 장면이 극히 일부의 모습이라 해도, 방송은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사회 밖으로 더 밀어 버렸다. 신문광고를 통해 게이들의 실태를 고발했던 취재파일에 나온 사람처럼 그들도 그 삶에서 벗어날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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