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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벽 뜯어내고 100만원 낼 뻔한 신입사원

직딩H 2010. 12. 8. 07:37

 

  입사한지 5개월 차 어리버리 사원이었을 때의 사건. 입사 후 처음으로 나름 큰 프로젝트인 회사 캐릭터 만드는 업무를 맡게 됐다. 수개월 동안 업체와의 미팅을 하고 팀회의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갔고, 드디어 최종 4가지의 시안이 나왔다. 우리회사 건물 7, 8층 엘리베이터 옆 벽에 각 4개씩의 보드를 붙여 직원들의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연말이라 연말휴가 기간이 겹쳐서 행여 보드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돼 가장 강력한 양면 테이프를 이용해 꼼꼼하게 붙여놓는 세밀함까지 발휘했다. 새해가 되어 잘 붙어있는 보드를 확인하고 안심을 하며 모서리 부분을 손으로 다시 한 번 꾹꾹 눌러줬다. 며칠 뒤 선호도 조사 기간이 끝나 보드를 제거하려는 순간. 붙여 놓았던 보드는 원래 벽이었던 듯이 벽과 혼연일체가 되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급한 마음에 있는 힘껏 잡아뜯었다. 하얀 벽 뒤에 있던 갈색(페인트와 벽 뒤의 합판이 뜯겨나감)의 속살이 드러났다. 지금 같았으면 시설관리 담당에게 바로 연락해 조치를 취했을 텐데 당황한 마음에 순식간에 다 잡아 뜯어내고 말았다. 덕분에 7, 8층 하얀 벽에는 보기 좋게~ 흉측한 상처가 생기게 됐다.

 

  믿을 사람은 팀장님뿐. 보고를 드려야 되는데, 출장을 가신 상황이라 주위의 조언에 따라 빌딩 시설팀에 연락을 취했다. 건물을 훼손했다고 욕만 얻어 먹고, 팀장님께 연락을 했다. 인사팀 시설담당자에게 얘기하라고 하셔서 일단 그렇게 조치를 취하고 하루 종일 좌불안석. 퇴근 무렵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층별 보수비용이 50만원. 합이 100만원이라고... 그 부분만 보수를 하면 얼룩이 생겨서 전체 벽을 다 칠해야 한다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

 

이어서 담당부문 상무님께서 친히 전화까지 하시어

 “니 돈으로 보수해라. 그리고 시말서 써서 제출해라~”

 라는 통보까지... 눈물 핑~

 

 

   너무 서러웠다. 정말 내 돈으로 보수 하라고 하신 건 아니었겠지만, 시말서는 써야 할 것 같았다. 회사 들어 온지 얼마나 됐다고인터넷을 뒤져 참고해 가며 정성스럽게 시말서 라는 것을 작성 해놓고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을 했다.

 

  다음날 팀장님께 상황을 말씀 드리고 시말서를 보여드렸다. 불같은 성격의 팀장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시말서를 찢어버리고, 상무님께 전화를 하셨다. “상무님, 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하다가 그런 건데 이렇게 까지 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로 통화를 시작하셨다. 팀장님께서는 저를 불러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일단 안심.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장님이 보시고 한 소리 하시면 어쩌지”라는 별의 별 생각까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벽이 말끔해져 있었다. 페인트 냄새가 어찌나 향기롭던지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누구도 이에 대한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 정말로 100만원이 들었다는 이야기 밖에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정말 회사 일을 한 것뿐인데, 마치 내가 정말 죄인이 된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당하지 못했음에 후회스런 마음도 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입사 5개월 차. 누구라도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텐데…?? 신입 시절에 겪은 황당하고 가슴 조렸던, 하지만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이 되어 있는 에피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