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직딩 라이프/:: 직장인 에피소드 ::

술 못 마시는 신입사원의 술자리 생존 본능

직딩H 2011. 1. 4. 06:30

  술자리가 많은 요즘. 신입 때 못 마시는 술 때문에 겪었던 고달팠던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저는 술이 딱 한 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정말 빨갛게 변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소주 두 잔(당시에는 25도의 두꺼비였죠)을 마시고 친구들이 집까지 데려다 준 경험이 있습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알콜분해 요소가 부족해 누나는 술을 전혀 못 마시고, 저는 그나마 조금 마시는 편입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에는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됐지만 직장생활에서는 또 다르죠. 

 

  직장생활에서 술자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승진 축하 회식, 위로 회식, 팀회식, 부문회식, 동기모임, 송별회, 환영회, 망년회 등 수많은 술자리가 있습니다. 입사 초 술 자리 자체는 좋은데,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서 늘 근심걱정을 동반하곤 했죠. 그런데 남자의 자존심이 뭔지 술 못 마신다는 말은 정말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전 항상 술은 정신력이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일단은 주면 마셨습니다.  


   회사에 입사해 환영식을 할 때 였습니다. 회사의 음주문화인 폭탄주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 당시 처음 세 잔은 기본으로 원샷 그리고 돌아가면서 반갑다고 따라주시는 술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살며시 화장실로 가서 오바이트를 충분히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잘 안 깨더라고요. 비틀비틀 택시를 타러 갔습니다. ‘빨리 타서 자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타자 마자 너무 어지러웠습니다. 잠은 안 오고 속에서 자꾸 올라왔습니다. 동부간선 도로 주행 중이라 세워달랄 겨를도 없었습니다. 결국 가방을 열고 쏟았습니다. 다음 날 플라스틱 파일 캐이스를 들고 출근 했습니다.

 

 ‘그래도 나 환영해 준 거잖아…’라며 스스로를  위안 했습니다  

 

  저는 기왕 술을 마실 거라면 오래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술이 깰 시간이 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 선배 두 명과 짧은 시간 찐하게(그래봐야 소주 반 병이나 되려나…) 마신 적이 있습니다. 얼굴이 빨개서 좀 창피했지만 좀 이른 시간이라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마시고, 갑자기 따듯한 곳에 들어와서 그런지 속이 안 좋았습니다. 청량리 역에 도착하기 약 30초 전쯤 조금씩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속으로 외쳤지만,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열차와 열차 사이 중간 지점에 들어가서 쏟자 마자 열차는 역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창피했습니다. 바로 내려서 밖으로 나와 가방을 버리고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도 가방 사건이 또 한 번 있었고콜택시를 타고 가다가 오바이트를 하려고 내렸는데, 택시가 도망간 적도 있습니다. .^ 다 신입사원 때 겪은 일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몇 번 겪은 후 다신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험한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술자리(정말 뺄 수 없는 자리)를 갈 땐 저만의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빈속으로는 절대 안마십니다. 술 자리 가기 전 편의점에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합니다. 설령 소고기를 먹으러 간다 해도 속을 채웁니다. 고기도 나오기 전에 폭탄주로 원샷을 하기 때문이죠.
둘째, 미리 컨디션 등의 숙취 해소 음료를 마십니다. 검증되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위로가 됩니다. “어제 마셨으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
셋째, 거절할 수 없으면 일단 다 받아먹고 빨리 오바이트를 하고, 천천히 깬다. 초반에 달리면 나중에는 다들 취해서 안 마셔도 됩니다. ㅎㅎ

넷째, 물을 많이 마신다. 저는 술만 마시면 화장실 무지 들락거립니다. 알콜분해 효소가 너무 부족해 알콜을 중화시키기 위해 물을 정말 많이 마십니다. 좀 귀찮기는 해도 술 깨는데는 좋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술은 먹다 보니 주량도 좀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입사 후 일년 정도 됐을 때 위내시경을 받았습니다. 식도염, 위염, 미란성 장염 등 5가지의 질병이 나오더군요. , 담배 절대 금하라는 말과 함께 한 보따리의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회사에 가져다 놓고 보란 듯이 챙겨 먹었습니다. 그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술을 덜 마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또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요즘은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의 술자리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못 마시는 사람에게 억지로 권하는 문화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술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전 술 마셔도 얼굴색 안 변하는 사람,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참 부럽습니다. ^^ 식도염은 완치가 어렵다고 하여 지금도 헛구역질 등으로 저를 괴롭히지만 과한 술 자리가 많지 않은 요즘은 살만합니다.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자리가 생기면 위의 4가지 방법을 그대로 적용한답니다. 저만의 생존 법칙 이니까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술이 몸에 안 받는 사람들은 본인이 정말 더 괴롭습니다. 빼는 거라고만 생각 마시고, 과학적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직장인 여러분 본인뿐만 아니라 딸린 가족들을 위해 올해는 적당히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