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면… 사랑하는 가족, 부모님, 친구들, 연인을 남겨 두고 어떻게 혼자 떠나야 한다면… 세상을 원망하고 모든 걸 다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나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오는 순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끊을 수 없는 운명적 고리이다. 인간의 삶에 끝이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
죽음은 더 이상 피하고 싶은 기피 대상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내 삶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생의 법칙을 미리 깨닫고 있어야 한다. 먼 훗날 혹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죽음이 낯설지 않도록 잠시나마 내 자신을 그리고 나의 죽음을 고찰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의 영화가 바로 죽음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같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지만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무의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애프터라이프), 죽음을 즐기는 모습(버킷리스트), 죽음을 관조하며 진정한 자아를 완성하는 모습(타임 투 리브)등 죽음을 향해 가는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 불행한 삶을 살았건, 화려한 삶을 살았건, 평범한 삶을 살았건 간에 이들은 결국 죽음 앞에 서있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한 그녀
영화 <애프터 라이프>. 죽음에 대한 주제를 다룬 영화다. “사람들은 왜 죽죠?”라는 질문에 “그래야 삶을 더 소중히 여기니까”라는 대답을 던지는 영화. 초등학교 교사이고 결혼 할 남자친구까지 있지만,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던 주인공(애너 테일러).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시체 보관실에서 깨어난다. 곁에 서있던 장의사(엘리엇 디콘)는 그녀에게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하필 나냐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결국 3일만에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었다. 무의미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본 장의사가 살아있는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녀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여있었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않았다. 다시 살아나도 또다시 반복될 우울한 운명에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 애프터 라이프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의미 없는 삶을 산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는 교훈을 던진다. 살아있는 주인공이 무미건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죽음 그 자체보다 더 침울하게 느껴진다.
죽음은 무료했던 삶의 새로운 의미
영화 <버킷리스트>의 카터와 에드워드에게 죽음은 전혀 낯설거나 당황스럽지 않다. 생의 마감을 앞두고 운명적으로 만난 이들은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아 떠난다. 노년의 카터와 에드워드에게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미약했던 부분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하는 자극제일 뿐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무료했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다.
<버킷리스트>에서의 감동은 한 줄 한 줄 지워져 내려가는 버킷리스트가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절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단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 낸 것에 대한 기쁨과 삶에 대한 완성으로 그려진다. 스카이다이빙을 즐기며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호랑이 사냥을 하고, 오토바이로 중국의 만리장성을 질주하고, 무스탕 셀비를 타고 카레이싱을 벌이며 여느 여행객보다 더 들뜬 모습을 통해 그들은 삶의 변화와 순간의 가치를 만끽한다. 삶의 변화가 이뤄지는 순간 일상의 가치를 깨달으며 평생 접하지 못한 경험과 같은 상황에 놓인 서로를 통해 비로소 죽음은 두렵지 않은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은 의미 있는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통한 삶의 완성
애너 테일러처럼 무의미한 죽음을, 카터와 에드워드처럼 행복한 죽음을 꿈꾸진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의미 있는 준비를 하는 젊은이가 있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타임 투 리브>.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사진 작가 로맹은 말기암 판정을 받고, 당혹감과 두려움, 그리고 자괴감에 사로잡혀 절치부심의 태도를 보인다. 모든 욕망은 희미해지고 이제 남은 건 자신과 관계없어 보이는 주변의 환상일 뿐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억지스런 이별을 하고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되어 버린다. 그가 삶을 마감하는 방법은 철저한 단절 그리고 고독이다.
하지만 결국 로맹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아간다. 또한 우연히 만나게 된 어느 불임 부부에게 자신의 또 다른 존재를 남기며 소멸이 아닌 부활하는 존재로써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다. 결국 <타임 투 리브>는 자기를 서서히 상실하는 내용의 영화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완성시켜가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죽음이란?
“죽으면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죽음에 대한 시선이 그리 낯설지 만은 않다. 사람들은 유서 써보기, 입관체험, 영정사진 찍어 놓기 등을 경험하며 죽음에 대한 연습을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느껴보는 죽음에 대한 고찰은 자신의 삶의 자취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며, 남은 인생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삶을 더욱 소중하게 할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즉 모든 욕구와 욕망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미련 없이 떠나 보낼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무한할 것 같지만 결국 끝이 있는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찾아오는 평온함.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가 본질적으로 낯선 것만은 아니다. 때문에 죽음이라는 대상은 삶을 의미 있게 바꾸어 주는 역설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의미 있는 죽음. 즉,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지금 당장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의 생활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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